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 감나영 변호사. [사진=여세린 기자]
로펌에서 기업 자문을 하던 변호사가 유엔난민기구(UNHCR)의 문을 두드렸다. 대단한 소명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한 감나영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때로는 법과 현실의 벽 앞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소외된 이들의 ‘보호’를 위해 ‘보편성에 대한 공감’을 무기로 사람과 제도를 이어가고 있는 감나영 변호사를 만났다.
Q. 어떤 계기로 국제기구, 그 중에서도 '난민'에 집중하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난민 이슈에 인생을 바치겠다"는 거창한 소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심사는 늘 여러 국가의 법률 문제가 관여되는 '크로스보더 이슈(Cross-border issues)'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정 공백에 있었습니다. 로펌 입사 초기에는 해외 진출 기업들을 주로 자문했고, 이후에는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형사·민사·가사 송무 전반을 대리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다 유기적으로 다루기 위해 여러 글로벌 조직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조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유엔난민기구는 다른 기구와는 차별화되는 특수한 영역인 '보호(Protection)'를 핵심 임무로 삼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온 난민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법적·행정적 신분을 새로 정립해야 하기에, 변호사로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 이끌려 합류하게 됐습니다.
Q.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내 변호사님의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현재 한국대표부는 30~40명 정도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고, 저는 보호팀 내 유일한 법무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된 업무는 '옹호(Advocacy) 활동'이에요. 난민법과 난민 제도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한국에 입국했거나 입국하려는 난민들의 법적 지위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위한 자문을 합니다. 이를 위해 법무부, 국회, 시민사회 단체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 업무의 단면을 잘라보면 정말 다채롭습니다. 회의와 협업을 조율하는 일부터 난민법 개정 의견서 작성, 시민단체·정부·다른 인권 기구와의 협력, 그리고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난민 소송 지원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변호사의 일상보다는 일종의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까운 것 같아요(웃음).
Q. 국내외 난민 문제를 접하면서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 인가요?
유엔난민기구는 개별 난민 상담을 전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현장에서 이분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제도적 차원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을 만나는데, 팽팽했던 대화가 진척되는 순간 가장 뿌듯합니다. 정부, 국회, 시민사회는 각자의 뷰포인트(Viewpoint)가 달라서 의견 차이가 큰데, 그 사이에서 저희가 대안을 모색하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가 넓어지고, 담론이 한 단계 발전해 법원이나 국회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실감할 때 법률가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 감나영 변호사. [사진=여세린 기자]
Q. 현장에서 법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한국의 사법 시스템 내에서 난민 보호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법적 과제는 무엇인가요?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입니다. 이렇듯 제도적 틀 자체는 선진화되어 있지만, 실무에는 여전히 다양한 과제와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어 있더라도, 일선에서는 교육이나 정보 전달의 편차로 인해 난민들에게 충분하거나 일관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무력할 때는 법적 틀이 바뀌지 않으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케이스들을 마주할 때입니다. 대표적으로 무국적자 학생 케이스가 있어요. 출생등록이나 국적 취득 과정에서 제도적 공백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정부나 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해도, 법이나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눈앞의 응급 상황에서 아무것도 약속드릴 수 없다는 게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제도 개선에 앞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이해’라고 생각해요. 대중을 향한 인식 개선은 물론이고,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교육이 확대될 때 난민을 둘러싼 상황을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이러한 토대가 생겨야 제도의 실질적인 구멍을 인지하고 유연하게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장에서 느끼는 난민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이 문제를 바라볼 때 가져야 할 '인권 감수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난민'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정의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난민은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혜택을 바라고 온 사람도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박해와 분쟁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출신국을 떠나온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는 환경, 법과 제도 안에서 적법하게 체류하고 살아갈 권리입니다.
‘인권 감수성’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보편성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대단한 사명을 다하는 인권 변호사가 아니라 난민 협약 체약국으로서 이행해야 할 적법한 의무를 다하도록 돕는 자문가라고 봅니다. 난민을 시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인권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도,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사람만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Q. 공익법 활동이나 국제기구 활동은 소명의식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한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대단한 소명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마음이었다면 저 역시 지쳤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변호사 커리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나 즉각적인 대우가 주어지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한 분야인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동력, 커리어의 장작이 되는 불쏘시개는 다름 아닌 '성장'입니다.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어려운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모든 과정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AI 프로젝트나 라운드 테이블 주관 등 로펌에 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다양하고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저만의 전문성과 시야를 넓혀가고 있어요. ‘다양한 경험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은 모두 자산이 된다’는 생각이 저를 지속 가능하게 합니다.

Q. 로펌에서 국제기구, 난민을 위한 길은 일반적인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결심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선배 변호사님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너무 낭만주의자 아니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맥락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했어요. 저는 ‘낭만주의자’가 맞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이런 일도 누군가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제 기준은 지금도 '가슴 뛰는 일' 입니다. 동기나 선배들의 탄탄한 트랙과 비교하면 저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불안정함이 있어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즐겨보자는 마음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말한 ‘커넥팅 더 닷(Connecting the dots)’을 믿습니다. 문제의식을 따라 하나씩 선택해 나가면, 그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점들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점들이 연결돼 제3의 멋진 결과물로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Q. 변호사님의 로스쿨 시절이 궁금합니다. 로스쿨 시절 경험이 현재의 업무 수행에 자양분이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스쿨 시절에도 글로벌 이슈와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아 공익인권법 학회 활동을 했고, 특히 리걸 클리닉 수업에도 두 학기 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시험 성적과는 무관했지만 저작권, 사회적 기업과 같은 특정 주제에 관해 실제 케이스를 검토하고 연구 논문을 쓰며 실무적인 논의를 치열하게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돌아보니 당시 공부했던 국제법, 인권, 아동 이슈가 제 DNA에 고스란히 남아 현재의 업무로 이어진 것 같아요. 꼭 전업 공익 변호사가 되지 않더라도 사회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두고 로스쿨에서 동아리나 리걸 클리닉 활동을 경험해보는 것은 법률가로서의 시야를 넓혀주는 의미 있는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 감나영 변호사. [사진=여세린 기자]
Q. 국제기구 변호사가 되기 위해 언어 능력 외에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언어 능력이 기본이지만, 단순히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 핵심입니다. 국제기구는 본부, 타국 사무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조율해야 하므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명확하고 쉬운 언어(Plain language)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열린 마음'입니다. 연차가 쌓이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며 생각이 닫히기 쉽지만, 국제기구는 협력 업무 중심이고 해보지 않은 일, 잘 못하는 일도 맡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보다, ‘하면 다 내 자산이 된다’는 열린 마음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하면서도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Q. 변호사 시험 합격과 취업이라는 과제 앞에서 로스쿨생들에게 공익과 국제기구라는 선택지는 멀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진로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저 또한 여전히 다음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진로 고민은 특정 시기에만 하는 게 아니라 커리어 내내 따라다닌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만 지금 내리는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중압감은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당장 대형 로펌에 가지 못했거나 생각과 다른 일을 하게 됐어도 무너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걸음 속에서 자신이 세운 기준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면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그 점들이 반드시 연결됩니다. 지금의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그 시간의 퀄리티를 좌우한다고 봅니다. 밖에서 보면 국제기구도 거창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매일 안 해본 일에 부딪히며 배워가는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모든 커리어는 결국 본인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Q. 감나영 변호사님이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제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상'입니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분쟁과 박해는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려는 작은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상 속 업무 조율에서도 "저 사람의 위치에서는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공감이 선행될 때 비로소 상호 존중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서로 다름을 알고 인정하는 데서 존중이 출발하는 것이죠.
저는 ‘언제나 눈이 반짝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진심으로 임하고, 늘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할 때 반짝임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변호사가 아닌 다른 이름이나 직함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늘 공부하고 성장하면서 세상에 따뜻한 공감을 더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출처 : 로스쿨타임즈(https://www.lawschool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