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력서에는 교과 성적 대신 흙냄새 나는 시간이 먼저 적힌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농장에서 사과나무를 돌보고, 중장비를 몰며, 도축과 인테리어 현장을 오가며 배운 세상. 검정고시와 방송통신대학교 진학으로 이어진 비정형적인 삶의 경로는, 그를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법조인으로 성장시켰다.

이강일 변호사가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Q.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저는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형·누나들과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습니다. IMF 이후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부모님은 교육 면에서는 굉장히 깨어 계신 분들이셨어요. 물질적인 유산보다는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셨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학교는 전교생이 40~50명 남짓한 작은 시골 학교였는데요. 친구들은 학원에 다녔지만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고, 초등학생 때 이미 수백 권의 책을 접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책을 많이 읽어 주기도 하셨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독서와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어도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들어 준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아요.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배치고사까지 보고 중학교 배정도 받아둔 상태였지만, 겨울방학 내내 가족과 긴 논의 끝에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사정도 있었습니다. 형‧누나도 대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급식비가 밀릴 정도로요. 다행히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형들과 누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교육자이셨기에 기존의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도 컸습니다. 형과 누나가 서울대를 목표로 온종일 문제집과 단어장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방식이 과연 모두에게 맞는 교육일까’라는 고민이 있었고, 막내인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키워보고 싶다는 가족들의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학업에서 잠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Q. 중학교 진학 대신 본격적으로 뛰어든 노동의 현장에서 어떤 일들을 경험했나요?
사실 그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경제적인 면만 부각되다 보니까, 어린 시절부터 강제 노동을 한 것처럼 비쳐졌는데요.(웃음) 그런 건 아니고요. 앞선 답변에서처럼 다양한 경험을 일찍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농사였어요. 과수 농사로 사과나무를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밭농사로 옮겨 밀, 고구마, 옥수수 등을 재배했고, 이후에는 약초 농사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농장에서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를 처음 접하면서 익혔습니다. 트랙터 같은 농기계도 몰았는데, 후에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농장을 옮겨 다니며 인테리어 일을 하기도 했고, 프로젝트 단위로 짧게 일한 뒤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도축, 오리 납품 같은 일도 그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12살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이어졌습니다.

2010년 굴삭지 정화조 작업 현장의 모습 [제공=이강일 변호사]
Q. 검정고시와 방송통신대 진학은 언제쯤 이뤄졌나요?
제가 한국 나이로 14살, 중학교 1학년쯤이었어요. 그때는 이미 농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고요. 큰형이 당시 의대에 다니고 있어서, 공부 쪽에서는 동생들을 다 이끌던 사람이었거든요. 어느 정도 형·누나들이 자리를 잡고 나니까, 막내인 제가 계속 농장에만 있는 걸 보고 위기감을 느낀 거죠. 그때부터 잔소리가 시작돼서 결국 그해 겨울에 공부해서 이듬해 4월에 중졸 검정고시를 보고, 이어서 8월에 고졸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농사지으면서 급하게 준비한 거라 두세 달 정도밖에 공부를 못 했는데, 다행히 운 좋게 붙었어요. 9월쯤 합격 소식을 듣고 나니까 형이 바로 “경험 삼아서라도 수능도 한 번 보라”고 해서 11월에 수능을 봤습니다. 저는 대학에 큰 미련은 없었지만 “그럼 방송대라도 넣어 보라”는 형의 권유에 따라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 2년 만에 대학생이 된 거죠.(웃음)
Q. 이런 삶의 경로 속에서 법조인의 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헌병, 군사경찰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수사 업무를 하다 보니 법무관들도 자주 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까이에서 보게 됐습니다. 제대 이후 어떤 사장님 밑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분이 “법을 한 번 제대로 공부해 보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하셨어요. 추천해 줄 만한 분야가 있다면서요. 그때 처음으로 ‘아, 그럼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Q. 로스쿨 진학을 결심하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경제적인 부분을 아예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다만 아주 막막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계속 일을 해왔고, 군 생활을 하면서도 경제 활동을 했잖아요.(웃음) 무엇보다 큰형의 도움이 컸습니다. 진학 준비를 하면서 형네 집에 머물면서 공부했는데, 형이 점심·저녁 도시락까지 직접 싸주면서 도서관에 보내줬어요. 리트 책도 많이 사줘서 다 풀었고, 영남대 로스쿨도 형이 먼저 추천해 줬습니다.
다행히 리트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왔고, 소득 분위가 3분위라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6학기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았고, 생활비 대출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현실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형 의대 다닐 때 생활비를 조금씩 보태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 몇 배로 돌아온 셈이죠.(웃음)
Q. 로스쿨에서의 3년은 어떻게 흘러갔나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1학기 성적이 70명 중 65등이었거든요. ‘이게 뭐지?’ 싶었죠. 게다가 오랜 노동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앉아 있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동기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고,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정규 교육 과정을 밟아온 동기들 사이에서 삽질(?)하다가 온 저를 붙들고 많이 가르쳐주셨거든요.(웃음) 지금 생각해도 동기들과 교수님들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영남대 로스쿨 학위수여식에서 이동형 교수와 함께 [제공=이강일 변호사]
Q. 현재는 어떤 분야의 업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신가요?
기업 업무, 특히 중소기업이나 소기업 사장님들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면서 법적인 문제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고 본업에 집중하실 수 있게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같이 현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야, 옛날에 땅 파던 이강일이 변호사가 됐대” 하면서 사건 하나 맡겨주실 때마다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상법 박사 과정에도 합격해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학력이나 경제적 여건 때문에 로스쿨 진학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로스쿨은 어떤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요?
로스쿨 진학을 학력이나 경제적 여건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길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면, 지방대 출신이거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로스쿨은 개인이 모든 걸 알아서 헤쳐 나가야 했던 과거의 사법시험과 달리, 하나의 교육 과정으로 체계화되어 있어 교수님들과 학교가 학습의 방향을 함께 제시해 주거든요.
무엇보다 로스쿨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험 생활과 달리, 3년이라는 분명한 시간표가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출구가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부를 이어가는 데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니까요. 또한 소득 분위에 따른 등록금 전액 장학금·생활비 지급, 학교별 장학 제도 등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도 매우 잘 갖춰져 있습니다. 원하는 길이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힘차게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Q. 법조인의 길을 꿈꾸지만 여러 이유로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즘 세상에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멋진 일입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최종 목표는 아닐지라도, 그 꿈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쟁취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꿈이든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며, 해보다가 생각과 다르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정말로 바라는 꿈이고 길이라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제 삶의 궤적이 그 살아있는 증거이자 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졸(초등학교 졸업 학력)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제 사례를 보시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출처 : 로스쿨타임즈(https://www.lawschool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