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어느덧 15년이 훌쩍 넘었다. 과거 사법시험 체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던 ‘첫 다짐’을 되돌아본다. 과거의 사법시험은 대학의 법학교육과 사법시험이 철저히 유리되어, 수많은 청년들을 신림동 고시학원으로 내몰고 이른바 ‘고시낭인’을 양산하는 심각한 폐해를 낳았다. 국가의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할 인재들이 골방에 갇혀 수험용 법학에만 매달리는 현실, 시험만 합격하면 ‘특권층’이 되어 한국 사회 곳곳의 요청과 괴리되는 현실을 타파하고자 한 것이 바로 로스쿨의 출발점이었다. 로스쿨 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단편적인 법률 지식의 암기 여부와 정도를 척도로 단순히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을 모아 전문적인 법률이론과 실무를 가르침으로써, 이들이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양성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어 사법접근권을 확대하고, 현대 사회의 복잡다기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다채로운 법조인을 배출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였다.
지난 시간 동안 로스쿨 제도는 법조계의 지나친 폐쇄성을 깨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을 배출하는 등 많은 성취가 있었다. 매년 7% 이상의 특별전형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도 큰 성취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 과연 현재의 로스쿨이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여건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로스쿨 내부적으로도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법학교육이 직면한 위기의 근저에는 ‘변호사시험’이라는 본질적인 질곡이 자리하고 있다. 제도 초기에 87%를 상회하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점차 하락하여 현재 50%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절반이 떨어지는’ 시험으로 변질되면서, 로스쿨은 시나브로 ‘변시 학원’으로 변질되었다. 로스쿨 제도의 애초 취지대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문·특성화 교육, 실무 교육, 공익적 실습 기회 등을 제공하고 싶어도, 그 누구도 변호사시험 준비와 무관한 수업이나 실습에 시간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점수대로 줄을 세워야 하니, 변호사시험도 점수 매기기 좋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학생들은 3년 동안 1만 2,000개의 판례 결론을 암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고 한다. 누구든 스마트폰만 열면 확인할 수 있는 판례 결론을 누가 더 잘 외웠는지 경쟁하는 시험. 힘든 로스쿨 입시를 뚫고 입학한 인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여 이 중 절반이 실패하는 시험. 이런 시험이 과연 로스쿨 교육의 취지에 부합할까.
그러나 로스쿨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 법조계는 놀라울 정도로 과묵하다. 주로 들려오는 주장은 시장 포화와 신규 변호사의 실력 저하를 이유로 변호사 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지는 않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전부터 변호사 업계가 포화상태라는 ‘과장된 항변’은 매년 계속되었으며, 필자가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던 1991년에도 사법시험 합격자를 300명이나 뽑으니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들어 추가된 것은, 인공지능이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게 되니까 변호사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반대로 묻고 싶다. AI 기술이라는 거대한 변화는 결코 법조계라는 좁은 영역만 덮치는 파고가 아니다. 이는 모든 경제 영역과 산업, 그리고 사회 구조 전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거대한 움직임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과 활동을 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진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를 대비해야 할 법조인의 역할이 오히려 더 커지지 않을까? 아니, 법조인에게는 이를 대비하기 위한 시대적 책무가 있지 않을까? 거대한 파고에 맞서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더 높게 세우는 것이 지금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아닐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복잡한 갈등과 윤리적 문제, 국제적 분쟁 속에서 법조인들이 나서서 활약해야 할 무대는 무궁무진하게 넓어지고 있다. 여전히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리는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영역과 지역사회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 지원 등, 변호사가 부족한 ‘전통적인’ 영역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쳇바퀴 도는 논쟁은 하지 말자. ‘좋은 법조인’을 어떻게 양성하고 배출할 것인지, 모두가 함께하는 대화를 시작하자. 우리 사회가 AI 시대와 글로벌 격변기에 필요로 하는 법조인,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의 사법접근권 확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법조인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에 관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들 간의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미래 법학교육 개혁 포럼’(가칭)이라는 협의체에 함께할 것을 법조계, 학계, 정책당국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미리 정해진 결론은 없다. 법학교육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참가자들은 실증적인 논거에 기반하여, 법학교육의 미래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할 것이다. 우리가 고민하여야 할 미래는 비단 한국 법조계만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마주할 미래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법치주의의 확립과 국가적 경쟁력의 확보를 위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시험이라는 한계에 갇혀 망가져 가는 한국 법학교육의 미래를 구출하기 위해, 지금 바로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홍대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출처 : 법률신문(https://www.law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