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효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4월은 잔인한 달"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인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했다. 생명이 싹트고 꽃들이 만발하기 시작하는 봄의 상징적인 달이라면 당연히 기대와 희망을 노래할 것 같지만 생명은 태어나면서 곧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하고자 한 듯하다.
왜 갑자기 머릿속에 이 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온통 전쟁과 질병으로 시끄럽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의 보직을 맡는 순간부터 4월은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피하고 싶은 달이 되고 말았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가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매년 4월이면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3년 동안 가르친 학생들의 변시 결과를 기다리면서 노심초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올해도 일부 변호사단체가 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수를 1200명대 이하로 줄이자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는 전체 응시자 3500여명 중에서 2300여명을 변시에서 낙방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수험생의 3분의 1 정도만 변시에 합격하고 3분의 2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변시합격자 수를 감축하자는 변호사들의 주된 주장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사건 수임 건수가 줄어들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과거에 비해 변호사수 증가로 인해 변호사업계에 경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과거처럼 변호사들이 사건 의뢰인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시절은 끝난 것 같다. 변호사들이 사건을 의뢰받으려면 직접 의뢰인을 찾아다녀야만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로스쿨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볼 때,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축소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변호사시험이 로스쿨 졸업생의 절반 이상을 낙방시키는 시험으로 운용된다면, 정규 교육을 통하여 다양하고 전문적인 실무능력을 갖춘 변호사를 배출하려 했던 로스쿨제도의 도입취지는 완전히 몰각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로스쿨 출범 당시 수 많은 논란 속에서 출발했던 제도의 근간마저 흔들리게 된다. 과연 누가 변시합격이 보장되지 않는 로스쿨에 입학해서 변호사가 되려고 하겠는가. 더더구나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인해 변호사들의 생계가 막연하다는데 말이다.
사실 로스쿨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상당히 우수하다. 대부분 대학 학부성적이 상위를 차지하고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 성적도 좋은 편이다. 로스쿨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들어오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입학한 우수한 학생들에게 로스쿨 교육을 통해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추게 하고 졸업시험과 변호사시험이라는 검증절차를 거쳐 변호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제도의 본래 취지였고 그렇게 시행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어떤 이는 로스쿨 교육이 마치 부실한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마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로스쿨에서 교수들이 담당하는 법학이론 과목 뿐만 아니라 실무경험이 있는 판검사, 변호사 출신 교수들이 가르치는 법문서작성 등 실무과목 강의도 상당히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법시험 시절에 법학강의도 제대로 수강하지 않고 시험에 합격하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로스쿨 교육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편이다.
더구나 입학전형부터 교육과정, 교원, 시설, 학생, 학생들의 강의평가 등 로스쿨의 입시 및 교육전반에 대해서 변협이 주도하여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또한 5년마다 평가위원들이 각 로스쿨을 직접 방문하여 실사 평가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간에는 로스쿨 자체 평가까지 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변협이 이렇게까지 하여 철저히 검증하면서 그러한 교육시스템을 통해 양성된 학생들 절반 이상을 변시에서 탈락시키자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견이지만 우리 로스쿨 교육과정과 졸업시험을 거쳐 배출된 학생들을 볼 때, 로스쿨 졸업생의 80% 이상을 합격시키더라도 지금 당장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현행 로스쿨제도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방소재 로스쿨에서는 지역인재 할당이 강제되고 있어 지방대학출신 학생들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제도는 서울지역 로스쿨에서는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지역 로스쿨과 지방소재 로스쿨 간 변시합격률의 구조적 차이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려해볼 만한 방법은 서울지역 대학들도 지방대학출신 학생을 학교규모에 따라 10~15% 정도 의무적으로 뽑게 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이 경우 지방소재 로스쿨에 똑같이 적용하면 서울지역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있는 지방의 로스쿨이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방 로스쿨의 경우 해당 지방소재 고등학교 출신들을 10~15% 정도 뽑도록 하면 된다.
서울과 지방의 구조적 격차를 해소할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나 서울지역 로스쿨들이 이를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서울소재 대학들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특별전형 비중이라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로스쿨이 기득권 신분세습의 사다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줄이고 서울과 지방이 상생의 길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시도해 볼만 하다고 본다.
어떤 제도든지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행 로스쿨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시행착오가 있었던 부분은 향후 평가 및 검증과정과 경험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고쳐나가면 된다고 본다.
변협의 일부 주장과 같이 로스쿨 졸업생들의 절반 이상을 탈락시키는 데서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변호사들이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유사 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협이 주장하는 유사 직역과의 통폐합은 장래 생각해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통폐합하자고 주장하면 유사직역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변호사들이 스스로 다른 직역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능력을 키우고 유사 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으로서는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우선은 변호사들이 세무사, 노무사, 변리사, 회계사 등 유사 직역의 시험을 직접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였는데 다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겠는가. 다만 문제는 시험을 보기 위한 준비시간과 노력인데, 변호사들은 학부 4년을 마치고 로스쿨에 입학한데다 변시준비하느라 노력과 열정을 이미 쏟았기 때문에 여력이 많지 않다. 따라서 전문 유사직역에 진출하고자 하는 변호사들에게 그에 대한 배려를 해줘야만 한다. 이는 변호사협회와 유사 직역 협회 간의 협의를 통해 시험과목축소나 1차 시험면제 등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본다.
다른 방법은 유사 직역에서 변호사의 전문성을 확대하는 것을 로스쿨교육과 시험 및 연수제도를 통해 제도화하는 것이다. 세무사, 변리사, 노무사, 회계사 등의 경우 충분히 확장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로스쿨 교육에서 선택과목을 강화하여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하고 선택과목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는 해당 직역의 연수를 마칠 경우 자격증을 부여받게 하면 된다. 이러한 방안 역시 변협이 유사 직역 단체와의 협의를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로스쿨에서 선택과목이 소외되는 현상도 막고 현재와 같이 낮은 변시 합격률로 인한 주요과목 위주의 로스쿨 교육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역할은 유사 직역의 범위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일반 기업체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금융감독원, 독점규제 등 관련기관 등을 포함한 각종 공공기관, 국제기구 진출 등 무한대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앞으로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을 더 많이 뽑아야 될지도 모른다. 로스쿨의 교육이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줄여 '변시 낭인'을 만들어내고 로스쿨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선택이 아니라 정부와 변협, 유사 직역 단체가 서로 상생 노력을 통하여 바람직한 해법을 찾길 고대한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생동하는 4월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41710282044309&type=1